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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황해도34

(0068) 석정(石井)교회 (황해도 황주군 소재) -그라함 리(이길함) 선교사의 수고가 깃든 교회- -그라함 리(이길함) 선교사의 수고가 깃든 교회- 석정교회는 황해도 황주군 청수면 석정리에 있었는데 마을에 돌에서 맑은 샘물이 솟는 우물이 있다고 해서 석정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그라함 리 선교사와 황주군의 교회들 ▣ 석정교회는 1897년에 세워졌다. 황주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는 1896년에 세워진 홍촌(洪村)교회이다. 그 다음해인 1897년에는 황주군에 교회가 여럿 세워졌다. 석정교회를 비롯하여 황주읍 서리(西里)교회, 용연리(龍淵里)교회, 연봉리(觾峰里)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라함 리(李吉咸) 선교사가 홍촌교회를 비롯하여 석정교회, 용연리교회, 연봉리교회를 세웠다. 황주읍 서리교회의 초대 담임자도 그라림 리 선교사였다. 그라함 리 선교사는 1900년에는 외하리교회를 세웠고, .. 2023. 7. 12.
(0063) 도리동(桃李洞)교회(황해도 곡산군 소재) -강이 흐르고, 나무가 많고, 꿀이 많이 생산되는 곳에 있었던 교회- -강이 흐르고, 나무가 많고, 꿀이 많이 생산되는 곳에 있었던 교회- 복숭아나무 도, 자두나무 리, 또는 오얏나무 리, 골 동 자를 쓰는 도리동(桃李洞)교회의 이름을 풀면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가 우거진 마을에 세워진 교회”가 되는데 도리동교회가 있었던 황해도 곡산군 화촌면(花村面) 도리동은 실제로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곡산군에는 이상하게 꽃과 관계있는 지명을 가진 곳들이 많았다.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이상향을 ‘무릉도원’이라고 하는데 곡산군에 도화면(桃花面)이 있었고, 도화면 안에는 무릉리(武陵里)가 있었다. 곡산군의 서촌면(西村面)에는 도리포리(桃李浦里)가 있었다. 이 이름을 풀면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많은 개울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 한문 교사 김두호 ▣ 도리동교회.. 2023. 7. 5.
(0060) 옹진읍(甕津邑)중앙장로교회 -해방 후에,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 -해방 후에,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 옹진읍중앙장로교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해방 이후에 세워진 교회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세위지고 나서 2년이 채 못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황해도 옹진군은 대부분이 38 이남 지역으로 남한의 통치를 받았다. 따라서 교회를 자유롭게 세울 수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북의 영토가 되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라는 것이다. ▣ 장로교회가 없던 지역 ▣ 옹진은 미 감리교회 선교구역이었다. 그래서 1938년 당시, 옹진군에는 마산(馬山)감리교회를 비롯하여 감리교회가 열다섯 개가 있었고 장로교회는 없었다. 부흥사 이강산(李康山)목사,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작사자인 이호운(李浩雲)목사, 박.. 2023. 6. 30.
(0059)겸이포(兼二浦)중앙교회(황해도 황주군 소재) -제철소로 유명한 곳에 세워진 교회- -제철소로 유명한 곳에 세워진 교회- 겸이포중앙교회는 황해도 황주군에 있었다. “겸이포”는 일제 강점기에 “와다나베 겐지”라는 일본 군인이 자기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와다나베 겐지’를 한자로는 겸이(兼二)라고 적는데 여기에 포구이니까 “포”자를 붙여서 겸이포가 된 것이다. 겸이포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던 곳이었다. 일본의 미쓰비시 재벌이 1918년에 이곳에 겸이포제철소를 세웠다. 이 제철소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지금의 이름은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이다. 이렇게 일본 기업이 있었기 때문인지, 일제 강점기 당시 이곳의 행정구역 이름을 보면 명치정, 릉정, 죽원정, 대정정…. 일본의 연호 같은 것에 일본식 행정구역 단위인 “정(町)”을 붙인 곳이 많았다. 해방 이후에는 그런 이름들을 다 없애고 새 이름.. 2023.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