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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황해도

(0060) 옹진읍(甕津邑)중앙장로교회 -해방 후에,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

by 산종 유관지 2023. 6. 30.

(0060)옹진중앙장로교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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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에,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중앙장로교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해방 이후에 세워진 교회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세위지고 나서 2년이 채 못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황해도 옹진군은 대부분이 38 이남 지역으로 남한의 통치를 받았다.

따라서 교회를 자유롭게 세울 수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북의 영토가 되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감리교 선교구역에 세워진 장로교회라는 것이다.

▣ 장로교회가 없던 지역 ▣

옹진은 미 감리교회 선교구역이었다.

그래서 1938년 당시, 옹진군에는 마산(馬山)감리교회를 비롯하여 감리교회가 열다섯 개가 있었고 장로교회는 없었다.

부흥사 이강산(李康山)목사,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작사자인 이호운(李浩雲)목사, 박용익(朴容翼)목사, 이렇게 잘 알려진 감리교 목사들이 이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그 열다섯 개 감리교회 가운데 염불리(念佛里)교회도 있었다.

염불리교회는 옹진군 서면 동오리에 있었는데 동네에 염불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래서 동리 이름이 염불리가 되었는데 거기에 교회가 세워져서 염불리교회가 된 것이다.

 

▣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에서 세운 교회 ▣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옹진읍중앙장로교회는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에서 1948년에 세웠다.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는 이름 그대로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목사를 기념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서 1927년에 평양에서 설립되었다.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는 토마스 목사전이라는 전기를 내고, 토마스기념예배당을 짓고, 전도용 선박을 마련해서 토마스 호라고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서 전도활동을 하여 교회를 여럿 세우고, 간행물도 발행하고, 많은 활동을 했다.

일본 당국은 1940년대부터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의 활동을 금했다.

 

815 해방이 되었지만 북한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는 38선 이남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는 토마스 목사가 선교활동을 하던 서해안에서 전도활동을 하기로 하고 옹진에 전도단을 파송했다.

그 결과 세워진 것이 옹진읍중앙장로교회이다.

 

▣ 옹진으로 피난 온 장로교인들이 모이다 ▣

이승길(李承吉) 목사가 옹진읍중앙장로교회의 초대 담임목사이고, 또 유일한 담임목사이다.

이승길 목사는 앞에서 말한 겸이포중앙교회(59)를 담임했던 분이다.

이승길 목사님은 해방 후 월남하여 서울에 와 있다가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의 파송으로 전도대원 열일곱 명과 함께 옹진군에 왔다.

이들은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북을 쳐서 사람들을 모으고 전도를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해서 사람을 모으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 사람이 운영하던 양천각이라는 음식점을 매입해서 교회로 개조해서 옹진읍중앙장로교회를 설립했다.

첫 예배에 80여 명의 교인이 모였다.

그 때 옹진에는 38 이북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장로교인들이 장로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나중에는 300명으로 늘어났다.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는 옹진을 비롯해서 서해안 일대에 모두 열네 개의 교회를 세웠다.

토마스목사순교기념전도회의 전도대원들 가운데에는 뒷날 목사가 된 분들이 여러 명 있다.

 

▣ 이승길 목사와 도인권 목사 ▣

감리교 선교 지역에 장로교회들이 세워졌기 때문에 초기에는 마찰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마침 옹진읍감리교회를 담임하면서 옹진지역의 감리교회들을 지도하고 있던 분이 도인권(都寅權) 목사였다.

도인권 목사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목회하다가 해방 뒤에 옹진에 와서 옹진읍교회를 담임하여 교회당을 신축하고, 옹진중학교도 설립하였다.

도인권 목사는 독립운동가였고, 이승길 목사도 독립운동에 앞장 섰던 분이었다.

도인권 목사와 이승길 목사는 한 때는 옥살이를 같이 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협력이 잘 되었다고 한다.

 

이승길 목사가 옹진에 전도하러 전도대와 함께 떠날 때 전도대에서 필요한 악기를 구입하는 비용도 인천의 한 감리교회 장로가 부담해주었다고 한다.

 

이승길 목사는 옹진중앙장로교회를 담임하면서 미신타파운동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옹진은 38선을 끼고 있는 곳이어서 6․25 전쟁 이전에도 북한군과 충돌이 잦았다.

당시 옹진에는 국군 제17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군과 충돌이 잦아서 주민들이 불안한 가운데 있었는데 이승길 목사가 의연하게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이 든든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승길 목사와 교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피난을 나오고,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다.

 

옹진읍중앙장로교회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해방 직후의 혼란과 6․25 전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옹진읍중앙장로교회의 정확한 주소도 전해지지 않는다.

 

옹진은 지금 황해남도에 속해 있다.

북한의 옹진군은 읍저(邑底)반도와 옹진반도, 마산(馬山)반도, 세 개의 반도로 되어 있다.

옹진군에는 몇 개의 섬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기린도(麒麟島)․룡호도(龍湖島)에는 교회가 있었다.

옹진군은 구츨라프 선교사․토마스 선교사 등, 초기에 선교에 뜻을 두고 한국을 찾아왔던 선교사들이 들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한에도 옹진군이 있다.

남한의 옹진군은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는데 지난 번에 포격사건이 일어난 연평도를 비롯해서 백령도, 대청도 등 서해5도가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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