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황해도34 (0052) 개성북부감리교회 -인삼을 저장하던 헛간〔삼포막(蔘圃幕)〕에서 시작된 교회- -인삼을 저장하던 헛간〔삼포막(蔘圃幕)〕에서 시작된 교회- 개성북부감리교회는 1901년에 설립되었다.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인 콜리어(C. T. Collyer:高永福) 목사가 개성에 정착해서 선교를 했는데 콜리어 선교사는 개성 산지현(山芝峴)이란 곳의 인삼을 저장하던 헛간을 매입하여 선교기지로 사용하였다. 이 인삼을 저장하던 헛간을 줄여서 삼포막(蔘圃幕)이라고 한다. 개성북부감리교회는 이 삼포막에서 출발했다. 선교사들은 이 삼포막을 ‘인디언 고무집(Indian Rubber House)'이라고 불렀다. 개성을 찾아오는 선교사들이 늘어나면 여기에 숙소를 더 짓고, 여기에서 진료도 하게 되어 또 늘이고, 고무줄처럼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개성북부감리교회는 1913년 12월 21일에 예배당을 봉헌했는데 입구에 .. 2023. 6. 16. (0051) 은률읍(殷栗⾢)교회 -지금도 교회당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교회- -지금도 교회당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교회- ‘은률’이라는 지명에서 ‘성할 은(殷)’은 광석이 풍부해서, ‘밤나무 률(栗)’은이 지역에 밤나무가 많은 률구(栗口)라는 밤나무가 많은 포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한반도의 명산 가운데 하나인 구월산은 황해도의 여러 군에 걸쳐 있는데 그 가운데 주봉(主峰)이 은률군에 있다. ▣ 독립운동가 우종서 목사 ▣ 한국에 제일 먼저 들어온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가 이 지역에 전도해서 여러 사람이 믿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1898년에 세워진 것이 은률읍교회이다. 1912년에 우종서(禹鍾瑞) 목사가 전도목사로 은률읍교회에 부임하였다. 우종서 목사는 독립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분인데, 평양장로회신학교 3회 (1910년) 졸업생이다. 백범 김구 선생에게 전도를 해서 예.. 2023. 6. 14. (0048) 강령군(康翎郡)의 교회들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포가 발사되었던 곳 -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포가 발사되었던 곳 - 예전 황해도 옹진군 남부지역인 현재의 황해남도 강령군은 북한의 여러 시와 군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곳이며 서해의 연평도에서 가까운 곳이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 때 강령군에 속해 있는 개머리 해안포기지와 곡사포기지인 무도(茂島)에서 포가 발사되었다. 개머리 해안포 기지는 강령군 부포(釜浦)로동자구 남동부에 있다. 무도는 “풀이 우성한 섬”이라는 뜻인데 강령군 평화리에 속해 있다. 평화리에 속해 있는 섬에서 가장 평화롭지 못한 일을 일으킨 것이다. 강령은 영강진과 백령현이 통합되면서 두 지명에서 한 글자씩 만든 이름이다. ▣1900년에 시작된 복음의 역사▣ 현재의 강령군에는 강령교회, 천상리(泉上里)교회, 식여리(食餘里).. 2023. 6. 9. (0046) 연안(延安)감리교회 -감리교의 황해도 선교의 발판- 연안감리교회는 황해도 연백군에 있었다. 연백의 원래 이름은 “끝없이 안전한 고장”이라는 뜻을 가진 연안이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에 배천군〔白川郡〕이 연안군에 편입되면서 이름이 연백군이 되어 1952년까지 연백군이라는 이름을 썼다. 현재 남한의 이북5도위원회 관할구역 일람표에도 이 곳의 이름은 황해도의 연백군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은 북한의 대표적 평야 가운데 하나인 연백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1952년 행정구역을 크게 개편했는데 이 때 배천군을 다시 분립시키면서 이 지역의 이름을 원래의 이름인 연안군으로 바뀌었다. 연안군은 대부분이 38선 이남으로서 38선을 경계로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었을 때 연안군의 대부분은 남한에 속했다. 그 때는 이곳을 남연백군이라고 했다. ▣ 나뭇골.. 2023. 6. 5.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