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황해도34 (0045) 풍천읍(豊川邑)교회(송화군 소재) -반공운동(신탁통치운동반대)에 앞장섰던 교회 - -반공운동(신탁통치운동반대)에 앞장섰던 교회 - 풍천읍교회는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풍해면(豊海面) 성상리(城上里)에 있었는데 풍해면은 예전에는 풍천군이었다. 옛날에는 풍주(豊州)라고 했다가 조선조 태종 시절에 풍천군이 되었다. 그 뒤 한 때는 풍율군(豊栗郡)이라고 했다가 다시 풍천군이 되었다. 풍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는 군보다 위인 도호부(都護府)였다. 그 뒤에 송화군 풍해면이 되었는데 이곳 출신 인사들은 지금도 “풍천”이라는 이름을 더 즐겨 쓰고 있다. 이곳에서는 사과를 비롯하여 과일들이 풍성하게 생산된다. ▣ 평양의 교인들과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 ▣ 풍천읍교회는 1895년에 설립되었다. 이면주(李冕周)라는 분이 평양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교회가 없는 것을 보고 열심히 전도했다. .. 2023. 6. 2. (0042) 신환포(新換浦)교회(황해도 재령군 소재 -초기에 천주교화 갈등이 있었던 교회- 황해도의 재령(載寧)에는 재령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흐르고 있다. 이 서강 기슭에 신환포라는 포구가 있다. 신환포는 ‘강이 방향을 새롭게 바꾸는 곳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신환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활발한 포구이다. 예전부터 농산물과 수산물의 집산지였다. 북한에서는 1986년에 평안남도 남포직할시와 황해남도 은률군을 연결하는 서해갑문을 만들었는데 이 서해갑문 덕택에 신환포는 물이 많이 차 있어서 큰 배들도 드나들고 있다. 신환포는 대동강 하류에 있는 공업지대들과 뱃길로 연결되어 있다. ▣ 한치순의 수고로 세워진 교회 ▣ 신환포교회는 이 포구에 1893년에 세워졌다. 신환포교회가 세워지는 데는 한치순(韓致淳)이라는 분이 큰 역할을 하였다. 한치순이 평양에 갔다가 사무엘 마펫 선교사를 만나 복음.. 2023. 5. 30. (0040) 중연(中連)교회(경기도 개풍군 소재) -6․25 전쟁 이전까지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렸던 교회- 강화도에 가면 양사면 철산리(兩寺面鐵山里) 강화 제적봉(制赤峰) 평화전망대가 있다. 제적봉은 해병대에서 붙인 이름인데, ‘붉은 무리를 제압한 봉우리’라는 뜻이다. 이 전망대의 이름은 ‘강화평화전망대’였는데 천안함 사건 이후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이 배천군〔白川郡〕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개풍군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예전 개풍군 광덕면인데 중연교회는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에 있었다. ▣105인 사건과 저다인 선교사▣ 전망대에서 보면 큰 냇물이 하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냇물이 금성천(錦城川)이다. 중연교회는 금성천 서쪽에 있었다. 이 지역은 감리교의 선교구역이었다. 중연교회의 정확한 설립연도는 잘 알 수 없는데, 1920년대초부터 .. 2023. 5. 26. (0039) 장단읍(長端邑)감리교회 -군사분계선상에 있었던 교회- 장단읍교회는 경기도 장단군에 있었는데 장단군은 개성 동쪽 바로 옆, 38선 바로 밑, 오늘날에는 군사분계선 바로 위에 있었던 곳이다. 장단역은 군사분계선상에 있으며 역사(驛舍)는 소실되고 플랫 홈만 남아 있다. ▣이장포교회를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 개성 일대는 남감리회 선교구역이어서 이 일대의 교회들은 대부분 감리교회였다. 장단읍교회는 감리교 중부연회 개성지방에 속해 있었다. 장단읍교회는 1901년에 설립되었다. 1898년부터 감리교 전도인들이 개성에 갈 때 장단에 꼭 들려 열심히 전도했다고 하는데 그 열매로 1901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장단읍교회는 이장포(梨長浦)교회를 바탕으로 하고 설립되었다. 이 이장포교회는 나중에 기도처로 격하가 되었는데, 주소는 장단군 진동면 동파리(東波里) 7.. 2023. 5. 25.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