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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121

(0109) 말휘리(末輝里)감리교회(강원도 회양군) -금강산 지역에 있었던 교회- -금강산 지역에 있었던 교회- 감리교회는 ‘구역’ 제도가 있다. 예전에는 한 분의 목사가 여러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한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들을 묶어 ‘구역’이라고 불렀다. 한 구역에 속한 교회들이 석 달에 한 번씩 함께 모였는데 이것을 ‘계삭회(季朔會)라고 했다. 감리교회에는 지금도 구역 제도는 남아 있지만 내용은 예전과 달라서 예산과 인사 문제를 다루는 회의를 ’구역회‘라고 부르고 있다. 감리교 동부연회 철원지방 안에 내금강구역이 있었는데 내금강구역 안에는 말휘리교회와 탑거리(塔巨里)교회가 있었고 산월리(山月里)기도처도 있었다. ’기도처‘는 교회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모임인데, 장로교에서는 이런 모임을 ’처소회(處所會)‘라고 불렀다. ▣ 금강산 지역에는 교회들도 여럿 있었다 ▣ 금강산 주변.. 2023. 9. 13.
(0108) 대기암(大奇岩)교회(평남 중화군) -채명신 장군의 외조부가 세운 교회- -채명신 장군의 외조부가 세운 교회- 대기암교회는 평남 중화군 신흥면 대기암리에 있었는데, 이 ‘북한 옛 교회들의 이야기’는 중화군에 있었던 교회들 가운데 사룡리교회(35번), 중화읍교회(66번), 건산리교회(75번)를 이미 소개했다. 중화군에 있었던 교회들이 이렇게 여럿 여기에 소개 되었다는 것은 중화군에 교회들이 많았고, 교회들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암리라는 이름은 마을에 물이 솟아나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박진준 장로와 채명신 장군 ▣ 대기암교회는 1896년에 세워졌다. 대기암리의 박진준(朴鎭俊)을 비롯하여 주민 여섯 명이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박진준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대기암교회의 출발이었다. 이들은.. 2023. 9. 12.
(0107) 홀동(笏洞)교회(황해도 수안군) -금광에서 시작된 교회- -금광에서 시작된 교회- 홀동교회는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구면(水口面) 보광리(寶光里)에 있었는데 보광리의 옛 이름이 홀동이었다. ‘홀(笏)’은 조선왕조 때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손에 쥐던 패를 말하는데, 옛날에 임금을 따라 왔던 어떤 관리가 그만 홀을 여기에 두고 간 일이 있어서 이곳을 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홀동에는 금광이 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해방 직전에 홀동금광의 금광석을 진남포의 제련소에 운반하는 사업을 했다. 홀동은 보물이 빛을 발하는 곳이라고 하여 보광리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보석리(寶石里)가 되었다. 해방 후 이 지역을 로동자구로 승격시킬 때 옛 이름을 찾아 ‘홀동로동자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 백여배와 그의 친구들의 기도 ▣ 홀.. 2023. 9. 11.
(0106) 풍산군(豊山郡)의 교회들(함남) -풍산은 풍산개와 미전향장기수 이인모(李仁模)로 잘 알려진 곳- -풍산은 풍산개와 미전향장기수 이인모(李仁模)로 잘 알려진 곳- 이 “북한옛교회들의 이야기”에서는 한 회(回)에 한 교회를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가끔 군이나 교회행정 단위인 구역을 한 단위로 해서 그 안에 있는 교회들을 모두 소개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장로교회의 경우는 온성군(0056)과 안변군(0062)을 그렇게 했고, 감리교회는 청진(0058)을, 침례교회는 원산 구역(0080)과 경흥 구역(0081과 0082)과 회령 구역(0083과 0084)을 그렇게 했다. 그 지역에 있는 각 교회들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을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풍산군에는 모두 11개의 장로교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설립연도와 역대 담임자, 그밖의 사실을 알 수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다... 2023.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