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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평안도37

(0090) 차련관(車輦館)교회(평북) -신사참배 가결 당시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가 담임했었던 교회- -신사참배 가결 당시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가 담임했었던 교회- 차련관교회는 평안북도 철산군 참면(站面) 서부동에 있었다. 차련관은 역참이 있었던 곳이다. 역참은 조선 시대에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에 숙식을 제공하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각 지방에 둔 숙박시설을 말한다. 시간이 꽤 걸릴 때 쓰는 ‘한참’이라는 말은 역참과 역참 사이를 이르는 말이었다. 차련관이라는 이름도 역참과 관계가 깊다. ‘차(車)’는 ‘수레 차’ 자이고, ‘련(輦)’은 ‘손수레 연’자, ‘관(館)’은 ‘객사 관’자이다. 차련관이 있었던 ‘참면’의 ‘참(站)’에는 ‘역마을’이라는 뜻이 있다. 차련관은 굉장히 번화한 곳이었던 것 같다. 예전 신문에서 ‘차련관’이라는 말을 검색해 보면 차련관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023. 8. 14.
(0089) 희천읍(熙川邑)감리교회(평북) -규모가 컸던 교회- -규모가 컸던 교회- 희천읍감리교회는 평안북도 희천군(현 자강도 희천시)에 있었는데 희천은. 평안북도의 내륙지방이었다. 평안북도 내륙지방은 미 북장로교의 선교구역으로 이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은 대부분 장로교회였었다. 그러나 평안북도 내륙지방 가운데 태천(泰川)․운산(雲山)․희천(熙川)․영변(寧邊)은 감리교 선교구역이었다. 선교구역을 정할 때, 어느 지역에 선교사가 들어가서 일정한 기반을 닦았으면 그 지역은 그 선교사가 속한 선교부의 선교지역으로 인정하기로 했는데 희천은 감리교의 모리스(Charles David Morris: 慕理是) 선교사가 먼저 선교활동을 했다. 모리스 선교사는 북한 전역을 선교구역으로 배정 받아 영변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희천감리교회는 감리교 서부연회 영변지방에 속해 있었다. .. 2023. 8. 11.
(0088) 안주(安州)동교회(평남) -교회가 왕성했던 안주노회의 중심교회- -교회가 왕성했던 안주노회의 중심교회- 안주동교회는 안주군에 있었는데, 안주는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경계선에 있는 도시로서 청천강을 끼고 있는 곳이다. ‘평안도’라는 이름은 ‘평양’에서 ‘평’을 따고 ‘안주’에서 ‘안’을 따서 만든 것이다. 안주는 예전부터 국방과 정치의 요충지였다. ‘안주’라는 이름은 ‘나라의 북방을 믿음직하게 지켜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가는 고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벌판이 넓고, 물이 맑아 살기가 좋은 고장’이어서 안주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1987년에 시가 되었는데, 안주에 있는 백상루(百祥樓)는 북한의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급 3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별명이 ‘관서제일루(關西第一樓)’이다... 2023. 8. 10.
(0085) 철산읍(鐵山邑)교회(평북) -명흥학교를 설립하고, 인재를 다수 배출하고, 해방 전과 후에 수난을 많이 겪은 교회- -명흥학교를 설립하고, 인재를 다수 배출하고, 해방 전과 후에 수난을 많이 겪은 교회- 철산읍교회가 있었던 철산군은 우리나라 서북쪽에 있는데, 염주군과 동림군 사이에서 철산반도를 이루고 있고, 산이 많아서 이름에 ‘산’자가 들어있지만, 그 산들이 대부분 낮고, 평야가 넓어 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현재의 철산군은 염주군과 동림군 사이에 있는데, 염주군과 동림군은 해방 이후에 새로 생긴 군들이고 예전에는 용천군과 선천군 사이에 있었다. 용천, 선천,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의주, 정주, 모두 기독교가 아주 왕성하던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의주는 ‘한국기독교의 관문’, 또는 ‘한국기독교의 발원지’라고 해도 좋을만큼 중요한 곳인데 이 의주를 통해서 철산에 기독교가 전해졌다. ▣ 처.. 2023.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