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동쪽 끝에 있었던 교회-
웅기는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에 있었다.
웅기는 지금의 라선(羅先)특별시에 있었던 곳인데 한반도의 동쪽 끝부분이다.
라선특별시는 라진과 선봉군이 합해진 이름인데 선봉군의 옛 이름이 웅기군이었다.
한반도에서 제일 동쪽은 독도인데 섬을 빼면 함경북도 라선특별시 우암리(牛岩里)가 제일 동쪽이다.
우암리의 예전 행정구역은 함경북도 경흥군 서면 서수라리(西水羅里)였다.
“서수라(일명 회향)”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의 이름인데 약용으로도 쓰고 기름을 짜기도 한다.
이곳은 물개가 많은데 북한은 이곳의 물개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 동사목사에 의한 목회가 행해지다 ▣
함경도는 거의 전부가 캐나다장로교회가 선교를 담당했었던 구역이어서 함경도에 있었던 교회들은 대부분이 장로교회들이었다. 웅기교회도 장로교회였다.
(이 ‘북한 옛 교회들이 이야기’에서 교파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는 교회는 모두 장로교회이다)
선교담당구역 분할 협정은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 맺어진 것이어서 다른 교파는 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함경도에 있었던 교회들은 대부분 장로교회였지만 침례교와 성결교에 속한 교회들이 몇 있었고 구세군 영문과 복음교회에 속한 교회들도 몇 있었다.
1938년 말에 선교담당구역 분할협정이 깨어짐에 따라 청진을 중심으로 네 개의 감리교회가 개척, 설립되었다.
웅기교회는 1915년에 세워졌는데 웅기읍교회라도고 했고, 웅기중앙교회라고도 했다.
웅기교회는 1922년에 교회당을 신축했다.
웅기교회는 초기에는 동사목사(同事牧師)에 의한 목회가 행해졌다.
오늘날 공동목회(Team Ministry)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동사목사는 그것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기록에는 동사목사에 대해 “목사 2인 이상이 합력하여 한 교회나 혹은 몇 교회를 동등한 권리를 갖고 근무하는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1917년에 열린 장로교 6회 총회에서는 동사목사를 “선교사와 같이 시무하는 목사”라고 규정했다.
1934년에는 동사목사에 대한 규정이 좀 자세해져서 “당회장은 순번으로 되고, 한 분이 사임하면 다른 분이 특별수속 없이 전권을 갖고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이런 제도가 거의 없고, 따라서 동사목사라는 말도 쓰이지 않는다.
1910년대에는 맥도널드(D. A. McDonald: 梅道奈) ) 선교사와 베시(F. G. Vesey: 芮詩) 선교사, 채필근(蔡弼根) 목사, 김관식(金觀植) 목사가 동사목사로 웅기교회를 섬겼다.
▣ 기장(기독교장로회) 지도자들이 많이 거쳐 간 교회 ▣
맥도널드 선교사는 1921년에 한국에 와서 회령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이 분은 교리보다 실천, 신조보다 사회윤리, 도시보다 농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분은 1938년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 함흥에 묻혔다.
베시 선교사는 원래 성서사업을 위해 한국에 온 분인데 영국 성공회에 속했다가 남감리회 선교사가 되었다가 캐나다장로회 선교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캐나다장로회가 초교파적인 연합교회가 되자 캐나다장로회에서도 탈퇴한 분이다.
캐나다장로회선교사로 일할 때는 함흥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채필근 목사는 평안도 분인데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북간도로 가다가 회령에서 캐나다장로회 선교사와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함경도 일원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채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첫 목회지가 바로 웅기교회였다.
채필근 목사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숭실전문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다.
김관식 목사는 경기도 양주 출신인데 역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북간도로 가다가 함경남도 이원(利原)에 잠시 머문 것이 계기가 되어 함경도 여러 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목사가 되었고, 캐나다 유학을 다녀와서 함흥 영생중학 교장으로 여러 해 일했다.
이 분은 연합기관을 많이 섬겼다.
1920년대에는 베시 선교사와 이성국(李成國) 목사가 성진교회의 동사목사로 일했다.
이성국 목사는 1913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분인데 다른 분들이 함경도 지방에서 주로 목회하신데 비해 이성국 목사는 평안남도, 중국동북지역, 서울 등 여러 곳에서 목회하셨고 해방 후에는 경남 마산에서 목회하였다.
아들인 이선용(李善用) 목사가 6ㆍ25 때 순교 당했다.
1940년대에는 조승제(趙昇濟) 목사가 시무하였다.
조승제 목사는 일본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웅기교회에서 첫 목회를 하였다.
조 목사는 웅기교회에 이어서 경남 감해, 전남 목포 등 여러 지역에서 목회를 하였다.
조승제 목사는 기독교장로회의 총회장도 지내고, 한신대학의 학장직무대리도 하고, 이렇게 기독교장로회 쪽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38년 장로교주소록에는 웅기교회의 주소가 그냥 “웅기항”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다른 기록에는 웅기교회의 주소가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상본정이라고 되어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의 변화가 아주 심했다.
웅기읍은 1981년에 선봉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에 선다”는 뜻을 가진, 정치적인 색깔이 강한 이름이다.
2000년에는 선봉읍이 상현동ㆍ중현동ㆍ하현동ㆍ송평동으로 나누어졌다.
모두 선봉항을 끼고 있는 지역들이다..
웅기교회가 있었던 웅기읍 상본정이 이 가운데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여러 가지를 살펴볼 때 상현동이 아닐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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