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성강 지류 남천 옆에 있던 교회-
대담: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남천감리교회는 황해도 평산군(平山郡)에 있었는데, 황해도는 1954년에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갈라졌다.
평산군은 황해북도에 속해 있다.
평산이라는 이름은 ‘평평한 분지와 평야로 되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평산군은 황해북도의 중앙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황해남도와 가깝고 예성강을 끼고 있는 곳이다.
평산군에서는 옥수수가 많이 난다.
경의선(북한 이름은 평부선)이 통과하는데 평산에서 청년이천선이 갈라지며 평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통과한다.
평산군은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출생한 곳이다.
▣ 개성의 영향 밑에 있던 교회 ▣
남천감리교회는 1901년에 세워졌는데 이 해에 개성(당시 이름 송도)과 그 주변에 교회가 여럿 세워졌다.
콜리어(C.T. Collyer: 高永福) 선교사가 남천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콜리어 선교사는 개성 선교의 개척자로서 1897년에 한국에 와서 윤치호(尹致昊) 선생과 함께 개성 선교를 시작했다.
콜리어 선교사의 뒤를 이어 케이블(E. L. Cable: 奇怡富) 선교사가 이 지역을 담당했다.
케이블 선교사는, 현장선교, 문서선교, 신학교 교수 등 여러 분야에서 수고했는데 한국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선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산군의 교회들은 오랫동안 개성의 영향 밑에 있었다.
감리교회는 교회 위에 지방이 있고, 지방 위에 연회가 있는데, 평산군의 교회들은 1932년까지는 중부연회 개성북지방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1932년에 평산지방으로 독립했는데 1934년에 평천(平川)지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평천지방은 금천군, 평산군, 신계군, 강원도 이천군(伊川郡)에 있는 감리교회들을 관할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연회가 폐지되고 교구제가 실시되었는데, 남천교회는 경기북교구에 속했다.
▣ 역대 담임자들 ▣
1920년대 전반부에는 앤더슨(L. P. Anderson: 安至善) 선교사와 김종만(金鐘萬) 목사가 남천교회를 담임했다.
앤더슨 선교사는 1914년에 한국에 와서 개성과 원산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41년에 일본당국이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할 때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해방된 다음에 다시 한국에 와서 개성에서 일했다.
이 분은 1950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일가가 모두 한국을 위해 수고를 많이 했다.
1920년대 후반부에는 김태식(金台植)전도사, 노병두(盧秉斗) 전도사가 수고했다..
그리고 이인구(李麟九)목사가 1929년에 남천교회를 담임하였는데 얼마 뒤에 휴직을 하고, 노형근(盧馨根) 목사가 부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1년에는 장병익(張炳翼) 목사가 담임했다.
장병익 목사는 개성북지방과 평산지방의 감리사를 지냈다.
장병익 목사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군인데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를 졸업한 뒤 개성과 황해도와 춘천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1934년을 전후해서 이석원(李錫源) 목사가 파송을 받아서 1940년대까지 담임했다.
이석원 목사가 감리사를 맡아 분주할 때 전병룡(田炳龍) 전도사가 파송을 받아 이석원 목사를 보좌해서 목회를 했다.
이석원 목사는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출신으로 협성신학교를 나온 뒤 성서공회에서 일했고, 그 뒤 개성과 철원지역에서 목회했다.
전병룡 전도사는 남천교회가 있는 평산군이 고향인데 피어선성경학원(현 평택대학교)을 졸업하고 개성, 장단, 연천에서 목회했다.
당시는 목사가 부족해서 한 목사가 여러 교회를 담임했는데 감리교회에서는 이렇게 한 목사님이 담임한 교회들을 묶어 ‘구역’이라고 했다.
남천교회는 평산구역에 속해 있었는데 평산구역 안에는 1938년 당시, 남천교회를 비롯해서 운현리(雲峴里)교회, 법천(法川)교회, 내남(內南)교회, 이렇게 네 개의 교회, 그리고 운천(雲川)기도처, 만지(蔓芝)기도처, 삼산(三山)기도처, 가정(佳井)기도처, 네 개의 기도처가 있었다.
앞의 목사들은 이 교회와 기도처들을 모두 담임하고 있었다.
▣ 규모가 컸던 교회 ▣
남천교회는 열여섯 칸 목조건물이었으며 지붕은 함석이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큰 규모였다.
그리고 목사주택과 전도부인 주택이 있었다. 남천교회는 교회 유지를 위한 논, 밭, 잡종지를 모두 2만 평 넘게 가지고 있었다.
1935년에 열린 제5회 중부연회에서 남천교회 담임목사 겸 평천지방 감리사인 이석원 목사는 “남천교회는 평천지방 안에서 제일 부흥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남천교회는 규모가 큰 교회였는데 이상하게 남천교회와 관련된 기록은 이것 말고는 다른 것은 찾기가 어렵다.
남천교회의 주소는 황해도 평산군 보산면 신남천리 61번지였다.
‘신남천리’라는 이름은 ‘남천(南川)을 끼고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남천은 예성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데 남천 주변에는 저수지들이 많이 있다.
해방 후 신남천리가 신남천1리, 2리, 3리, 4리로 나누어진 것을 보면 신남천리는 대단히 넓었던 것 같다.
이곳은 거의 대부분이 1952년에 평산읍에 편입되었다.
지금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평산군 평산읍이다.
평산군 주변에는 재미난 뜻을 가진 산이 둘 있는데 하나는 감악산(減惡山, 585m)이고, 하나는 멸악산(滅惡山, 818m)이다.
악을 감한다, 악을 멸한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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