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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강원도

(0055)삭녕(朔寧)감리교회(경기도 연천군 소재) -백로가 날아드는 산이 있고, 산과 물이 좋은 곳에 있었던 교회-

by 산종 유관지 2023. 6. 23.

(0055)삭녕감리교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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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가 날아드는 산이 있고, 산과 물이 좋은 곳에 있었던 교회-

임진강을 끼고 있는 삭녕은 원래는 독립된 군이었다가 1914년에 연천군에 통합되어 연천군의 서북지역을 이루었는데 625 전쟁 이후 북한의 철원군에 속하게 되었다.(남에도 철원군이 있고, 북에도 철원군이 있다.)

 

▣ 순교자 한사연 목사와 허성범 전도사 ▣

삭녕감리교회는 1916년에 설립되었다.

설립될 때에는 남감리회 서울지방에 속해 있다가 그 다음 해부터 철원지방에 속했다.

남감리회 전도인들이 경기도 고양에서 전도를 하다가 당시 김화군에 속해 있었던 지경대에 와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웠고, 지경대에서 철원, 김화로 복음이 퍼져 나갔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삭녕에도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삭녕감리교회는 초기에는 셔라우스(C. F. Shearouse: 史羅時) 선교사와 한사연(韓士淵) 목사가 담임했다.

셔라우스 선교사는 1921년에 한국에 와서 1925년까지 선교활동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강원도에서 사역했다.

한사연 목사는 평남 안주 출생으로, 예수를 믿은 다음에 매서인이 되어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전도했는데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지고 깊은 오지까지 찾아다녔다.

북한지역이 공산화되었을 때 한 목사는 김화읍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월남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계속해서 예배를 인도했다.

공산정권은 김화읍교회를 빼앗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한 목사는 가까운 곳의 성결교회를 빌려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다.

한 목사는 6ㆍ25 전쟁 중에 원산으로 끌려가서 순교당했다.

한 목사의 둘째 아들이 의사였는데 아버지의 목회를 돕다가 비슷한 때에 함께 공산당에게 피살되었고, 자녀들 대부분이 희생당했다.

그 다음에는 가상욱(賈湘旭) 전도사가 담임을 했다.

가상욱 전도사에 대해서는 1923년에 전도사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1930년을 전후해서는 이강삼(李康三) 목사가 삭녕감리교회를 담임했다.

이강삼 목사는 경북 김천 출신인데 한학, 국어학을 공부했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법과도 졸업하였다.

그 뒤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해서 1927년에 졸업했다.(제13회)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삭령에서 전도활동을 하셨고, 철원지역과 고향인 김천지역에서 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1929년부터 1932년까지 다시 삭녕교회를 담임하였다.

 

그 다음에는 이순칠(李順七) 목사, 1935년에서 1939년까지는 한성옥(韓聖玉) 전도사가 삭녕교회를 담임했는데 이 두 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1940년대 전후에는 허성범(許聖範) 전도사가 삭녕교회를 담임했었는데 허 전도사는 6ㆍ25 전쟁 당시 후퇴하는 인민군들에게 끌려가서 소식이 끊어졌다.

순교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 삭녕 구역의 교회들 ▣

앞에서 이미 여러 번 말한 것과 같이, 감리교는한 교역자가 여러 교회를 담임하고 그 교회들을 묶어서 “구역”이라고 했는데 지금 말한 교역자들은 ‘삭녕구역’을 담임하고 있었다.

삭녕구역 안에는 삭녕교회를 비롯해서 여덟 개의 교회가 있었다.

그 당시의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연천군 서면(현 북한의 황해남도 장풍군) 석둔리에 있었던 석둔리교회, 귀존리에 있었던 후평(後坪)기도처, 솔현리에 있었던 임죽(林竹)기도처와 봉래(蓬來)기도처, 당시 행정구역으로 황해도 금천군 숙인면 결운리(현 황해북도 토산군 양사리)에 있었던 매곡(梅谷)교회, 장포리(현 황해북도 토산군 룡암리)에 있었던 두현(斗峴)기도처,황해도 금천군 월성면 부압리(북의 강원도 철원군 부압리)에 있었던 서재동(書齋洞)교회 등이다.

이 교회들은 대개 열 평 미만의 목조건물로서 지붕은 기와이거나 함석, 아니면 초가지붕이었다.

삭녕교회는 두 개의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는데 하나는 9평 규모였고, 하나는 12평 규모였다. 둘 다 목조였고, 기와지붕이었다.

개성에 있던 선교사들이 예배당 짓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 지금은 백로산리 ▣

 삭녕교회의 원래 주소는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 삭녕리 244의 7호였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북한의 강원도 철원군 백로산리이다.

1996년에 삭령리를 백로산리로 이름을 바꾸어서 삭녕이라는 이름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곳은 곡식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백로가 날아드는 산이 있고, 산과 물이 좋아 사람들이 무병장수하는 곳이라고 해서 백로산리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곳은 사과가 잘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도 군사분계선 가까운 지역이어서 긴장이 흐르고 있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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