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츠(나부열)선교사가 담임했던 교회-
평북 구성은 조선조 세조 때 정주에서 분리되었는데, 이곳에는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서 쌓은 성이 있었다.
그 성들로 둘러막힌 산줄기들이 거북이 잔등을 닮았다고 해서 그 성을 구성(龜城)이라고 불렀고, 지명도 성(城)의 이름을 따랐다.
▣ 구성에서 다섯 번째로 세워진 교회 ▣
구성에는 일찍 교회들이 세워졌다.
구성 서북쪽에 의주가 있는데 의주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가장 빨리 들어온 곳이다.
의주의 초기 기독교인 가운데 한 분인 백홍준(白鴻俊)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1883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백홍준은 사위인 김관근(金灌根)과 사돈인 김이련(金利鍊 : 김관근은 김이련의 둘째 아들)에게 전도해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했다.
그 때 마펫, 게일 등 선교사들이 의주에 자주 왔는데 김이련과 김관근은 선교사들과 만나면서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마펫 선교사는 의주에 올 때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주민들은 ‘쇠말을 타고 오셨다.’고 하면서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김이련과 김관근 부자는 구성 전도에 힘써서 1895년에 구성에 신시(神市)교회를 설립했다.
‘신시’라는 이름은 마을 한가운데 새 장거리가 생겨서 생긴 이름이다.
이 구성신시교회는 평안북도에서 의주읍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길상교회는 1905년에 세워졌는데 구성의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 지역인 이현면(梨峴面) 길상리에 세워졌다.
이현면은 선천군, 그리고 정주군과 붙어 있는 변두리 지역인데, 배나무고개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현면이라고 했다고 한다.
길상교회는 구성에서 다섯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는 앞에서 말한 신시교회이고, 그 다음은 1904년에 세워진 남시(南市)교회, 세 번째는 같은 해에 세워진 이현교회, 네 번째는 1905년에 세워진 구성읍교회, 그 다음이 길상교회이다.
▣ 첫 담임자 로버츠 선교사 ▣
길상리에 광산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그 가운데는 교인들도 있었다.
최현보(崔賢輔)라는 사람이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제공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길상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교인들이 늘어나 백 여 명이 되자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초기에 로버츠(S. L. Roberts) 선교사가 담임했었다는 것 외에는 길상교회와 관련된 다른 기록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변두리에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에 기록이 이렇게 빈약한 것 같다.
길상교회는 평북노회에 속해 있었는데 교회주소록에도 이상하게 구성군에 있었던 교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정주군에 있었던 교회들 틈에 끼어 있다.
로버츠 목사는 북장로회의 선교사로서 1907년에 한국에 와서 구성에서 가까운 선천에서 일했다.
선천은 교회의 세력이 강해서 ‘기독교 왕국’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되는데는 로버츠 선교사의 수고가 컸다.
이 분은 선천에서 5년 일하고 평양장로회 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부임했다.
이 분은 성경을 거의 암송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을 보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고 한다.
로버츠 선교사는 1924년에 마펫 선교사의 뒤를 이어서 제2대 교장이 되었는데 여러모로 학교를 새롭게 하기 위해 힘썼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 성서학자 박윤선 목사를 비롯하여 한국 장로교의 기둥역할을 한 많은 목사들이 이 분의 제자이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로버츠 교장은 신사참배에 반대해서 학교의 문을 닫았다.
일제가 선교사들을 강제로 추방할 때 미국으로 가서 1946년에 세상을 떠났다.
로버츠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나부열(羅富悅)인데 ‘라디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말끝마다 ‘이랬디요’ ‘저랬디요’ 했는데 성과 ‘디요’를 합해 그런 별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서 길상리가 원진리가 되다 ▣
길상교회의 옛 주소는 평안북도 구성군 이현면 길상리이다.
이곳에는 높이 594m의 길상산이 있고, 길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구성시 원진리(元鎭里)이다.
이곳 출신으로 박원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인제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박원진을 ‘공화국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고향인 길상리를 원진리라고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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