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너진 제단을 찾아서/기타

(0082) 경흥구역의 침례교회들② -오지(奧地)인 삼수군에도 침례교 전도인의 발길이 닿았다-

by 산종 유관지 2023. 8. 2.

(0082)경흥구역의침례교회들②.pdf
0.18MB

 -오지(奧地)인 삼수군에도 침례교 전도인의 발길이 닿았다-

경흥구역에 있었던 열네 개 침례교회를 경인구역의 침례교회들에 이어, 설립순서에 따라서 살펴보면 여덟 번째 교회는 풍인침례교회이다.

 

▣ 함북선이 통과하는 마을에 있었던 교회 ▣

풍인침례교회는 1936년 봄에 박승옥, 손윤근 두 분에 의해 세워졌다.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에 풍인리(豊仁里)가 있었는데 풍인침례교회는 이 풍인리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풍인리는 탄광지대로서 이곳에 있는 풍인탄광은 북한의 중요한 석탄생산기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지역에는 풍인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함북선이 통과한다.

함북선은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회령군과 온성군을 지나 나진시를 잇는 철도로서, 함경북도 북부의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과 강석, 목재들을 운반하는 산업철도이다.

함북선은 동시에 국경을 따라가는 국경철도로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화물들을 반입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해서 두만강을 따라가면 건너편 북한쪽에 철도 하나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함북선이다.

함북선의 역들 가운데 풍인역이 있다. 풍인침례교회는 풍인역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의 지금 행정구역은 함경북도 온성군 풍인로동자구이다.

‘로동자구’는 북한의 독특한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인데, 이름 그대로 노동자들이 밀집하는 곳에 붙여진 행정구역의 명칭이다.

 

다음은 약산침례교회, 약산침례교회는 1938년에 박진덕이라는 분에 의해 설립되었다.

북한에 ‘약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참 많이 있다.

제일 잘 알려진 곳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에 나오는 영변의 약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경흥구역에 있는 침례교회들을 살피고 있는데 경흥에서 가까운 곳에는 약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없다.

함경남도 영흥군, 지금 이름 금야군에 약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고, 부전군에도 약산이 있는데 약산침례교회가 두 곳 가운데 어느 곳에 있었는지, 혹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곳에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가 없다.

 

다음은 용복동침례교회, 용복동침례교회는 1938녀 봄에 이피득이라는 분에 의해 설립되었다.

‘피득’은 잘 알고있는 것과 같이 ‘베드로’의 한자 표기이다.

예전에 함경남도 삼수군 관흥면 개운성리에 용바위골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용바위골을 한자로 용복(龍伏)골이라고 적었다. 용이 엎드린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를 낀 마을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룡복동침례교회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지금은 량강도 삼수군 룡복동리가 되어 있다. 삼수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험한 곳으로 예전에는 귀양을 많이 보내던 곳이었다. 김소월의 시에도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삽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崎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라고 시작되는 “삼수갑산”이라는 시가 있다.

룡복동리는 리 전체의 91%가 산림으로서 삼수읍에서도 140리 이상 떨어진 변두리지역이다.

앞에서 침례교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오지를 찾아 교회를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삼수군이 이런 곳이기 때문에 침례교 전도인의 발길이 닿았을 것이다.

 

▣ 러시아와 중국을 마주보는 곳에 있었던 교회들 ▣

다음에는 사회침례교회, 사회침례교회는 1939년에 김대남이라는 분이 세웠다.

라선특별시에 사회리(四會里)라는 곳이 있다. 사회리는 예전에는 경흥군 고면에 있었는데 큰 소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는 경흥군 경흥면 사회동이었다. 사회리는 두만강을 사이에 끼고 러시아와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앞에서 말한 함북선 철로가 통과하고 있는데 역 가운데 사회역이 있다.

 

다음은 홍의동침례교회, 이 교회는 1939년 봄에 최춘영이라는 분이 설립했다.

라선특별시에 홍의리(洪儀里)라는 곳이 있다. 홍의리는 원래는 경흥군 로서면 증산동이었다. 홍의동침례교회는 홍의리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홍의리는 앞에서 말씀드린 사회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앞에소 소개한 웅상침례교회가 있었던 웅상리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홍의리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동북지역 훈춘시와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다음에는 라진침례교회, 이 교회는 1939년 봄에 박진덕이라는 분이 세웠는데. 박진덕은 앞에서 말씀드린 약산교회도 세운 분이다. 라진침례교회는 예전 라진시에 있었다. 예전 라진시의 일부는 지금 나선특별시에 속해 있고, 일부는 청진시 청암구역에 속해 있다.

 

마지막으로 남흥동침례교회, 남흥동침례교회는 1940년 봄에 유반장이라는 분이 설립했다.

예전에 ‘남흥동’이란 지명을 가진 곳은 여러 곳에 있었다. 산이나 강의 남쪽에 새로 일어나는 마음이 있으면 나믕동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함경도에도 남흥동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모두 경흥군과는 거리가 좀 먼, 함경남도 지역에 있었다. 함흥시, 단천시, 운흥군, 요덕군, 북청군, 부전군, 이런 곳에 남흥동이 있었다.

 

북한정권은 함경남도 풍산군을 김형권군(金亨權郡)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는데 김형권군 안에도 남흥동이 있었다.

김형권은 김일성의 숙부이다.

이렇게 남흥동이 여러 곳에 있는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경흥구역 밖의 지역이기 때문에 경흥구역 남흥동침례교회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통일선교의 모든것 유니미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