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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황해도

(0121) 신촌(新村)교회(황해도 송화군) -예전엔 송화군, 지금은 과일군에 있었던 교회-

by 산종 유관지 2023. 10. 12.

(0121)신촌교회(황해송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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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송화군, 지금은 과일군에 있었던 교회-

<현 황해남도 과일군 위치>

신촌교회는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에 있었는데, 송화군에는 교회가 대단히 많은 편으로서 1938년도 장로교 주소록을 보면 송화군 안에 설흔여섯 개의 교회 이름이 나온다.

송화군에 있었던 교회들 가운데 풍천읍(豐川邑)교회와 송화읍교회가 잘 알려져 있다.

신촌교회는 1912년에 세워졌다.

기록을 보면 덕홀(德屹)교회가 신촌교회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덕흘교회라는 이름은 장로교 주소록을 비롯하여 여러 자료를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덕흘리라는 지명도 발견되지 않는다.

 

▣ 황해도 출신들이 담임하다 ▣

신촌교회는 처음에는 평신도 두 분이 교회를 지도했는데 그 이름이 유동승(劉東承)과 김형목(金亨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어 방학성(方學聖)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방학성 목사는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한문을 공부했다.

이 분은 청소년 시절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1926년에 졸업을 했다(19).

졸업하기 이전 여러 곳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졸업한 그 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방 목사는 신촌교회 하나만 담임한 것이 아니라 양지동(陽池洞)교회를 함께 담임했다.

방학성 목사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에 월남해서 전라북도 김제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한 뒤 소천했다.

 

1938년에 박성겸(朴聖謙) 목사가 부임했다.

박성겸 목사는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서 1938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했다(33).

졸업한 그 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신촌교회에 부임했는데 도은(道隱)교회를 함께 담임하다가 3년 뒤에는 도은교회만 담임했다.

박성겸 목사님도 1951년에 월남했는데 월남할 때 노회록과 직인, 의사봉인 고퇴, 최초의 한글성경인 로스역을 가지고 왔다.

황해노회는 이것을 총신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성겸 목사는 백령도에서 목회하다가 서울로 왔고 파주에서도 목회했는데 황해노회장을 역임했고 1972년에 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장을 지냈다.

 

▣ 옛터를 찾기 어렵게 되다 ▣

<예전 황해도 송화군 천동면 위치 붉은 원 안이 신촌리와 대야리 위치>  출처 : 나무위키 송화군

신촌교회의 예전 주소는 황해도 송화군 천동면(泉洞面) 신촌리(新村里)였다.

신촌리라는 이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1967년에 송화군의 서부지역을 떼어 과일군을 새로 만들었다.

그 지역에는 규모가 아주 큰 과수종합농장이 있다.

신촌리교회가 있었던 지역은 과일군에 속하게 되었다.

신촌리교회가 있었던 일대는 황해남도 과일군 신대리(新大里)가 되었다.

신촌리에서 을 따오고, 대야리(大也里)에서 를 따서 대야리라는 이름을 만든 것이다

신촌리는 모두 과수원이 되었고,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

그러니까 신촌교회는 옛터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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