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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함경도

(0111) 종성(鍾城)교회(함북) -현재의 온성군 종성로동자구에 있었던 교회-

by 산종 유관지 2023. 9. 18.

(0111)종성교회(함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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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온성군 종성로동자구에 있었던 교회-

종성군은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읍에 있었는데 종성군은 1974년에 없어졌다.

북한은 종성군의 많은 지역을 온성군과 회령시에 편입시켰고, 일부 지역은 경원군(慶源郡; 예전의 새별군)과 경흥군(慶興郡; 예전의 은덕군)에 병합하면서 종성군을 폐지했다.

종성군에는 고려 때까지 여진족이 살았는데 세종대왕이 북방회복 정책을 펴면서 이곳에 진(鎭)을 설치했다.

그 때 ‘종 모양으로 생긴 산에 성을 쌓았다’고 해서 이름이 ‘종성’이 되었다고 한다.

 

▣ 김영제 목사, 그리고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들 ▣

종성교회는 1909년에 설립되었다.

종성교회는 장로교회였고, 함북노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일섭(高一涉)이라는 분이 예수를 믿고 전도를 하기 시작하여 신자가 점점 늘어났는데 이들은 오준경(吳俊京)이라는 분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뒤에 김영제(金永濟) 목사가 와서 공식적으로 교회를 설립했다.

 

김영제 목사는 ‘함경도 교회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이 분은 평양장로회신학교 3회 졸업생인데(1910년 졸업) 처음에는 북간도 지역(오늘날의 연변지역)에서 일했다.

캐나다장로회가 함경도 선교를 담당했는데 캐나다장로회는 북간도 선교에도 힘썼다.

김영제 목사는 캐나다장로회의 그리어슨(Grierson; 具禮先) 선교사와 푸트(Foot; 富斗一) 선교사를 도우면서 많은 수고를 했다.

김 목사는 역시 캐나다장로회 선교사인 맥레(McRac; 馬具禮)와도 가까웠다. 그는 맥래 선교사의 어학선생을 하였는데, 일제가 외국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할 때 맥레 선교사가 김영제 목사님을 찾아와서 붙들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지난 2010년에 맥레 선교사의 자서전인 「팔룡산 호랑이」가 한신대 출판부에서 출간되어 이 선교사의 모습을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앞에서 종성교회는 함북노회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함경노회 하나였다가 나중에 함북노회, 함남노회, 그리고 함중노회로 분립되었다.

함경노회는 1912년에 조직되었는데 김영제 목사가 초대노회장을 지냈다.

김영제 목사님은 나중에 함경남도 원산으로 목회지를 옮겼는데 원산에서 목회하면서 함남노회장을 세 번 역임했다.

3․1 만세운동을 원산에서 겪었는데 일경에 체포되어 중강진(中江鎭) 형무소로 끌려가서 5년이나 고생을 했다.

둘째 아들인 기석(基錫)도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함흥 감옥에서 옥사했는데 그 장례식에는 원산의 기독교인 거의 모두가 참석했다.

 

▣ 종성군은 해체되었어도 ▣

종성교회의 담임자에 대해서는 1913년에 박병수(朴秉洙)라는 분이 조사로 수고했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고, 박병수 조사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종성군에는 행영면에 행영(行營)교회, 상삼봉역전에 상삼봉(上三峰)교회, 동관진 역전에 동관진(潼關鎭)교회가 있었다.

 

종성교회의 주소는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읍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로동자구이다.

종성군은 사라졌어도 종성이라는 이름은 종성로동자구, 종성읍성, 종성강, 그리고 종성역, 이렇게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종성역은 함북선에 있는 기차역인데 함북선은 그 주변에서 탈북자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성로동자구는 두만강을 끼고 중국을 마주 보고 있는 접경지대로서 종성강이 이곳에서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하면 이곳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함북선의 강안역 같은 곳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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