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제단을 찾아서/평안도

(0117) 개천읍(价川邑)교회(평남) -군사요충지에 세워진 교회-

산종 유관지 2023. 10. 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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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요충지에 세워진 교회-

개천읍교회는 평안남도 개천군에 있었다.

평안도의 많은 부분은 미 북장로회의 선교구역이었는데 일부는 미감리회가 선교를 담당했다.

개천군의 일부도 미감리회 선교구역이어서 개천에는 감리교회가 하나 있었다.

개천군 북면 원리(院里)에 있었던 북원(北院) 감리교회인데 이 교회는 감리교 서부연회 영변지방에 속해 있었다.

여러 번 이야기 되었지만, 지금 북한의 핵기지로 유명한 영변은 예전에는 감리교가 아주 왕성했었던 곳이었다.

 

▣ 악명 높은 개천교화소 ▣

<평남 개천시 위성사진 붉은 원 안이 개천교화소>         출처 : 구글 위성지도

개천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개천교화소이다.

남한의 교도소를 북한에서는 교화소라고 하는데, 북한의 교화소는 지역별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교화소는 강도와 절도범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

개천교화소는 여성들을 수용하는 교화소이다.

또 한국을 비롯해서 외국과 관련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도 개천교화소에 수용된다.

그래서 탈북민들 가운데는 개천교화소 출신이 많다.

북한은 2007년에 개천교화소를 확장했다.

개천교화소는 3층 건물로서, 오각형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 개의 감시탑이 세워져 있으며 신발제조공장과 벌목장 등 노역시설을 갖추고 있다.

개천교화소는 재소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고, 인권침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개천의 는 착할 개()자인데 원래는 끼일 개()를 썼다.

청천강과 대동강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개천은 1990년에 시로 승격이 되었다.

개천은 공업도시인데 석탄채굴, 광석채굴, 금속공업, 기계공업이 발달한 곳이다.

천안함 폭침에 사용된 어뢰도 개천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천군에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는 1904년에 개천군 중남면(中南面) 삼소리(三所里) 설립된 무진대(無盡臺)교회이다.

개천읍교회는 그 다음해인 1905년에 설립되었고, 한 해 뒤에 내동(內東)교회가 세워졌다. 개천에는 교회들이 많지 않았다.

앞에 나온 교회들과 봉창(鳳倉)교회, 동명(鳳鳴)교회, 화동(花洞)교회가 개천군에 있었던 교회의 전부이다.

 

▣ 이치수 목사 ▣

개천읍교회는 이치수(李致洙) 전도인의 수고로 세워졌다.

이 분의 전도로 믿게 된 이들이 처음에는 용현리(龍峴里)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렸는데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개천면 군우리(軍隅里)에 교회당을 짓고 용현리교회와 합해 개천읍교회가 된 것이다.

이치수 전도인은 평안남도 북부지역 전도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는 개천읍교회와 내동교회를 설립했고, 조사가 되어 이들 교회와 함께 숙천읍교회를 섬겼다.

이치수 조사는 1910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3회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그때는 노회가 독로회(獨老會) 하나 밖에 없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 블레어 선교사를 도우면서 개천군의 개천읍교회, 무진탑교회, 안주군의 용전교회, 숙천군의 숙천읍교회를 담임했다.

 

개천읍교회는 안주노회에 속해 있었다.

평안남도에는 평남노회 하나가 있었는데 1921년에 평남노회를 평양노회평서노회안주노회, 셋으로 나누었다.

이치수 목사는 안주노회가 조직될 때 부노회장이었고, 2대 노회장, 나중에 20대와 21대 노회장을 역임했다.

 

개천읍교회의 주소는 평안남도 개천군 개천면 군우리였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남도 개천시 군우동이다.

군우리는 군사요충지로 원래는 군모루라고 했다.

군사들이 주둔해 있던 곳이라는 뜻이다.

625 전쟁 때 미 제2사단과 터키군이 이곳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손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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